담양읍 용화사. 여기에는 아주 특별한 이들이 산다. 도를 닦는 ‘어린 부처’들이다.

까까머리만 빼면 해맑은 눈동자에 천진난만한 웃음이 이웃집 장난꾸러기와 다르지 않다. 부처님 오신 날마다 마스코트처럼 등장하고선 부모의 품으로 돌아가는 동자승과는 달리 이들은 정식으로 출가한 동자승이다.

속가에서는 한창 어리광을 피우며 떼를 쓸 나이에 염불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철스님(담양중 1). 먹성 좋은 맏형 선우스님(담양중 2)과 사람 좋은 선재스님(담양남초 5). 해맑게 웃다가도 뒤에서 남몰래 일을 벌이고야 마는 사고뭉치 일광·월광(담양남초 5) 쌍둥이 스님. 아직도 장난스러움이 가득한 선일(담양남초 4)· 선경(담양남초 2) 스님들이 한데 부대끼며 용화사의 일원으로서 삶을 개척하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동자스님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용화사에 모였다.

‘인연대로 만나면 모두가 가족이 된다’는 30년 내력의 용화사 전통을 이어가듯이 이들이 살아 숨 쉬는 용화사엔 늘 사람 사는 내음과 웃음이 가득하다.

용화사를 지켜가는 어엿한 동자승들이지만 짧았던 속세생활은 행복했다고는 할 수 없다. 부모의 이혼, 엄마의 가출로 인해 가정의 정다움을 느끼기도 전에 이웃이나 친척의 손에 이끌려 출가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더러는 부모님이 맡기고 간 아이도 있지만 이들은 이미 속세를 등지고 용화사에 둥지를 텄다. 절을 집으로 수진 큰스님을 어버이로 여기고 꿋꿋이 용화사의 새 삶을 일구는 것이다. 자연을 벗하며 용화사에 뿌리내려 서로의 상처를 보듬은 이들은 용화사 담장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다. 따뜻한 가정을 잃은 이들에게 용화사는 부처님의 자비가 가득한 극락이요, 천국이다.

◈ 새벽을 여는 동자스님들

새벽 3시 50분, 용화사의 어린 스님들은 햇님 보다 먼저 일어나 새벽을 연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새벽예불 시간 졸음이 몰려들어 꾸벅꾸벅 졸기 일쑤지만 졸음에 질 이들이 아니다. 목청 높여 염불을 외고 애꿎은 목탁을 거푸 두드리며 어린 스님들은 씩씩하게 새아침을 맞이한다.

어린 나이에 마냥 힘들고 고된 새벽 예불이지만 어느덧 익숙한 하루의 일과가 된지 오래이다.
스님이 되고자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절에 들어온 선철 스님. 스님이 되고자 하는 욕심도 열정도 가장 크기에 선철스님에게 새벽 예불은 고되고 힘들더라도 하루 중 가장 값진 시간이다.

선철스님에게 뒤지기 싫어하는 선우 스님은 범종을 타종하고 선재 스님은 소종(법당종)을 도맡으며 선일스님은 경쇠에 몰두해 있고 일광· 월광·선중 스님들도 다른 스님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연신 목탁을 두드린다.

꼬마 달마들은 새벽 5시 30분까지 예불을 드린 후 1시간 동안 학교 수업을 위해 예·복습 하느라 바쁜 숨을 내쉬다가 6시30분 아침 공양을 마치면 학교로 발걸음을 옮긴다.

왁자지껄 떠들며 가는 등굣길은 짧기만 하다. 이들은 학교에 가면 또래 학생들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학생으로서 본분에 충실하지만 저녁 6시부터 동자승들의 사찰 일과는 계속 이어진다.

6시 30분 저녁 공양을 마치고 공부면 공부, 일이면 일 뭐 하나 소원한 법 없는 동자스님들은 스스로 제가 할 일을 찾아 나서다 대웅전의 촛불이 불을 밝히는 저녁 9시 무렵에야 동자승의 재잘거리는 소리도 잦아들고 용화사의 밤은 깊어만 간다.

◈ 죽비소리에 깃든 큰 스님의 사랑

동자승들의 발걸음이 닿는 곳엔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절간의 생활이 그렇게 녹록치는 않은 법. 하하 호호 마냥 웃다가는 어디서 죽비가 날아올지 모르는 일이다. 졸음에 겨운 염불외기는 기본이요. 한문공부에 붓글씨 쓰기까지. 배움엔 끝이 없다. 그뿐인가. 한자공부를 할 때면 틀린 개수만큼 벌을 받고, 수업시간 꾸벅꾸벅 졸다간 칼바람 같은 죽비가 등줄기를 가르고 지나간다.

엄격한 불계의 전통을 이어받아 놀 땐 놀더라고 확실한 법도를 가르치기 위해 이들 뒤에서 묵묵히 동자들을 지키는 수진스님이 있다. 그저 작은 흠일지라도 모른 척 하기보단 한 번 더 죽비를 손에 들었던 절의 큰 어른이 계시기에 동자승들은 아이에서 탈바꿈해 어엿한 스님으로 바로 설 수 있었다.

동자들의 여린 어깨에 죽비를 한 번 내리칠 때 마다 자신의 마음은 두 번, 세 번 내치신다는 수진 스님. 이들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기에 동자스님들은 수진 스님의 가슴이 부처님 품처럼 편안하기만 하다.

이처럼 동자승들의 아버지이자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는 수진스님에게도 애로사항이 있다.

용화사가 좁다고 누비고 다니는 동자승들이 벗어내는 산더미 같은 빨래를 세탁기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겁기만 하고 학교 공부와 불경을 병행해야 하다 보니 학업성적이 떨어져 이들을 보살펴줄 도우미와 가정교사 역할을 해줄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요원하기만 하다.

수진 스님은 “어려서부터 출가를 원하는 아이들이 전국적으로 족히 2-300명은 될 것이다” 며 “사찰에 살고 있는 아이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엄청나 이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켜 본인뿐 아니라 한국불교가 흥할 수 있고 사회의 인재로 거듭 날수 있다”고 강조했다.

◈ 절로 크는 아이들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나이인데다 늘 함께 생활하다 보니 가끔 티격태격 주먹다짐을 벌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웃고 떠들며 어깨동무를 하는 것이 용화사 동자스님들이다.

절간 살림도 마찬가지. 때론 게으름을 피워 혼이 나기도 하지만 빨래면 빨래, 청소면 청소 자신들에게 주어진 만큼의 일은 기어코 해내고야 만다.

땀방울을 쏟으며 주어진 일을 하며 흥에 겨워 미소 지을 수 있는 동자스님들.

용화사 안에서 ‘절로’ 큰 기특한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에서 어린 부처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같은 또래 아이들처럼 차이가 없도록 본인들이 하고 싶은 태권도·피아노·컴퓨터·속셈 등은 자유의사를 존중하고 있으며 잘못할 때는 체벌보다는 108참배를 통해 잘못한 것을 스스로 인식케 하는 등 불가 특유의 교육법으로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용화사가 창건된 이래 지금까지 100여명의 동자승을 거둬 부처님 제자로서의 삶을 영위해 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회사원·교사·중소기업체 대표 등 사회의 필요한 동량으로 성장한 이도 부지기수 이다.

하지만 모든 동자승들이 스님들의 마음처럼 올바른 길을 걷지 못하고 도둑질·끽연·음주 등 일탈행위로 인해 공동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불편을 초래한 사례도 간혹 가다 발생해 안타까움을 더해주기도 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밝힐 연등을 만들기 위해 동자스님들은 오랜만에 머리도 밀고 때도 한 꺼풀 벗겨낸 것을 비롯 마음에 켜켜이 쌓였던 앙금과 상처까지도 말끔히 씻어낸 뒤 저마다의 소원을 적고 마음의 연등에도 불을 밝히는 환한 웃음이 부처님의 자비로운 모습일 것이다.
/정종대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