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탐사의 동기부여를 한 예비 산꾼의 조언에 따라 방축재-덕진봉-광덕산-시루봉-운대봉-강천산-오정자재 구간(도상거리 17.4km) 산행에 나섰다.

대나무골 담양과 인접한 순창 금과 마을에서 호남정맥 들머리를 잡고 산행에 올랐다.

예비 산꾼이 준 개념도 한 장을 의지 한 채 복분자 싹이 한창 움트는 봄 햇살을 가슴 가득 안고 유달리 새빨간 황토밭을 지나자 비실이 부부를 비롯한 낯 익은 호남정맥 표식기들이 우리를 안내한다.(호남정맥 탐사는 올해 초부터 시작됐으나 본지 사정에 의해 게재 하지 못함에 따라 계절의 차이가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아름드리 소나무 밭길을 따라 덕진봉을 향해 잘 조성된 등산로를 가다보니 간간히 봄의 기운을 가득 담은 봄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아낙네들이 눈에 뜨인다. 마을에서 바라볼 때 완만했던 능선과는 달리 오름길이 쉽지 않아 초장부터 힘이 든다.

전문 산악인의 도움이 없이 초보 산행자들로 구성되다보니 조금만 숨이 차면 가다 쉬다를 반복한 끝에 덕진봉(384m)에 다라랐다.

돌무더기만이 가득 쌓여있고 바람도 조용하고 주변이 고요하며 조용한 숲으로 우거진 봉우리다. 먼저 간 호남정맥 종주자들의 흔적인 표식기 만이 덕진봉 돌무덤과 어우러져 마치 성황당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잠시 숨을 고른 일행은 개념도에 의지해 산행을 재촉했다. 50여m를 내려 가다보니 잡목과 가시가 많은 구불구불한 길이 우리를 맞이한다. 잡목 속에서 살포시 모습을 드러낸 산드릅을 꺾어 일용할 양식(?)을 삼기 위해 산행을 잠시 뒤로 한 채 잿밥에 눈이 멀어 가시밭길을 헤치고 지나다보니 어느덧 야트막한 야산 끝에 이르렀다.

따사로운 봄볕을 가슴 깊이 들어 마신 진달래가 함초롬이 분홍빛 속살을 내비추고 일행을 맞이한다. 세찬 북풍한설을 이겨낸 진달래이기에 온실에서 자란 꽃 보다 진한 생명력과 함께 향이 그윽하며 자유스러움이 느껴진다.

초보 산행을 알기라도 하듯이 다행스럽게 간간이 불어주는 봄 바람이 싱그럽기만 하며 산에 온 것에 대한 행복감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세갈래 갈림길이 자주 나온다. 그러나 먼저 간 이들의 표식기가 우리를 제대로 인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겨우내 떨쳐 낸 솔잎이 수북하게 쌓여 푹신푹신하고 CF 광고처럼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청량함을 선사하고 있는 소나무 길이 좋다.

조용한 오르내림이 이어지면서 길옆에 자기 색을 자랑하는 이름 모를 꽃들이 정맥 탐사에 나선 이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조그만 오르내림 속에 숨 가쁘게 오르니 이름모을 봉우리가 일행을 맞이한다. 황사가 심해지면서 멀리 있는 산들은 형체가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나 저 멀리 우뚝 솓아 있는 광덕산과 산성산이 높다랗게 기다리고 있다. 어른 키보다 웃 자란 진달래 군락을 통과하다보니 인기척에 놀란 산토끼가 급하게 뛰어 일행을 깜짝 놀라게 한다.

토끼 보고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가다보니 임도를 만난다. 임도 밑에 자리한 축사에서 들려오는 송아지 울음소리가 여유로운 전원의 풍경을 만들고 있다.

임도를 따라 한창 오르다 산으로 들어서니 멀리서 덕산사회복지관이 보인다. 가파른 절벽에서 내려다본 산하가 아름답다. 골프장, 골프텔, 위락시설을 갖춘 롯데에코랜드 사업이 당초 목표대로 이뤄졌다면 과연 어땠을까? 하고 자문자답을 한 채 산행을 이어갔다.

초보 산행에 나선 일행이 드디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광덕산(583.7m) 초입부분을 지나쳐 버린 것을 헬기장에 도착해서야 알게 됐다. 먼저 온 등산객들이 여기 저기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하다 보니 커다란 헬기장이 대형 식당으로 변했다.

일행들은 옆에 자리한 이들로부터 광덕산 등반을 간접 경험하는데 만족키로 하고 준비해온 점심을 마쳤다.

오후 들어 시작한 산행도 녹록지 않다. 급격한 경사가 등산객들의 발길을 무겁게만 해 등산로가 형형색색의 인파로 길다랗게 줄이 늘어섰다. 이 구간에 진기한(?) 소나무가 있다는 예비 산꾼의 말이 생각나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로 신기한 소나무들이 자리하고 있다.

일명 ‘가랑이 소나무’ 생긴 모양 그대로 붙인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순창군에서 번호표를 달아 놓아 집중 관리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실제로 담양 야산에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소나무 인데 이를 관광자원화 하려는 순창군의 경영 마인드가 번쩍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연리지 비슷한 소나무도 간간히 시선을 붙잡는다.

저 멀리 산성산에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 바위 사이로 난 길에 로프가 늘어져 있고 햇빛은 강하게 내리쬐고 있다. 산불이 난 오솔길 사이를 통과해 철 계단을 올라서니 금성산성 내로 진입했다.

시루봉에 올라서니 금성산성 일주 길에 나선 등산객들이 온 산야를 가득 메우고 있다. 바위에 자란 잡목을 의지해 조심스럽게 올라 간 시루봉을 뒤로 한 채 일행은 바삐 재촉한 끝에 동문을 거쳐 북문에 이르렀다.

담양댐에서 올라오는 시원한 바람이 일행에게 힘을 실어준다. 도토리를 줍기 위해 나선 다람쥐들이 일행을 보고 나무위로 한달음에 도망간다. 겨우내 감추었던 생명의 기운들이 나타나면서 새들의 지저귐이 정겹기만 하다. 이처럼 생명의 기운이 살아있는 산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것이 행복감으로 밀려온다.

잘 정비된 금성산성이 좋다. 산을 좋아하는 산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좋다. 산바람도 좋다. 정말 산이 좋아지려나 보다. 하루 내 울리지 않던 핸드폰이 울렸다. 예감이 좋지 않다. 아니나 다르까?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서문으로 하산했다. 담양리조트 뒤편에 자리한 연못 옆에 우두커니 서있는 한그루 소나무가 보인다. 영상미가 뛰어난 연출가에 의해 좋은 영화나 CF의 장면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산행의 길라잡이를 해준 예비 산꾼이 하산주로 막걸리와 두부를 권했다. 황사주의보가 내린 것을 이때 알게 됐다. 초보들의 건강을 배려 해준 예비 산꾼의 따뜻한 마음이 넘실대는 막걸리 잔은 비교도 안되게 가슴을 조용히 적셔온다.

호남정맥 땜방(오정자재-강천산-산성산)

오정자재 까지 가지 못 한걸 때우기 위해 산행 멤버들이 다시 뭉쳤다. 가마골과 순창군 접경인 오정자재에서 들머리를 잡고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예비 산꾼의 개념도와 먼저 간 표식기를 이정표 삼아 용기(?)있게 농장 옆 임도로 오르니 ‘입산금지 특용작물 재배’ 푯말이 가끔씩 보인다.

오름길이 가파르게 일자로 선 길에 땀이 흐르고 숨이 찰 쯤 해서 완만한 오름길이다. 기분 좋은 공기가 가슴 한곳까지 꽉 차 오른다. 많은 이들이 찾지 않아 능선 길에 바닥이 푹신하게 편하고 햇빛은 나뭇가지에 새어 들어오고 바짝 마른 갈대 잎을 흔든다.

송전철탑 밑을 통과해 내렸다가 오르는 길이 힘이 든다. 오름길이 점점 높아지고 일행들의 발걸음이 마법에 걸린 것처럼 일순간에 늦어지고 시간은 빨리도 간다. 苦盡甘來란 말이 달리 나왔겠나 싶다. 뚝뚝 떨어지는 땀 들 사이로 멀리 산성산과 광덕산이 보인다. 날씨 까지 화창해 조망이 끝도 없이 좋아 보인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가슴까지 쳐들어 와 마음속 깊은곳 까지 점령하니 피로한 산길이 지치지 않고 끝까지 가고 싶다.

전망 좋은 곳에서 바라본 산야는 자연의 정기가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만 느껴지고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도 즐거움에 장단을 맞춘다.

호남 정맥산행에 나선 이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옛 어른들이 어찌 알고 조상을 호남정맥이 지나는 곳에 모셨는지 가히 신기할 뿐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이름난 지관이 아니더라도 왜 정맥이 흐르는 곳에 묘를 조성했는지는 不問可知이다. 그러나 이제는 온전히 보전된 묘보다 파묘한 묘들이 많은 것을 보면서 ‘이제는 묘지로 부터 자연을 보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천만다행이다.

후손들이 돌보지 않아 마른 풀이 우거진 묘를 넘어서자 눈에 익은 금성산성 성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랜 기간 고향을 떠나 외지에서 생활하다 고향을 알리는 이정표만 봐도 반가운 것처럼 벌써부터 들떠온다.

강천산에서 올라 온 듯한 산악인 한 무리가 앞서가면서 나누는 대화가 생경하게 다가온다. 산 하나를 경계로 이처럼 억양이 다를까? 곰곰히 생각하면서 발길을 옮기다 보니 어느덧 북문에 다라랐다.

어린 손자 손을 이끌며 산을 찾은 노부부와 가족들이 정담을 나누며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북문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어려움을 함께 해서인지 몰라도 탄탄한 가족의 정이 피부에 와 닿는다.

하산길을 서문에서 회향정으로 잡은 일행들은 1시간여 동안 담양호반을 따라 임도를 걸으면서 화려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는 새하얀 벚꽃과 샛노란 개나리의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정종대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