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산꾼과 함께 호남 정맥 산행을 처음 시작한 곳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유둔재에서 선돌고개 구간(18.9km)은 남다른 감흥과 추억이 새록 새록하다.

유둔재에서 호남정맥의 마루금을 따라 힘찬 출발을 한 일행은 비록 봄은 찾아왔지만 아직까지 매서운 꽃샘추위를 가르며 정맥과 하나가 되기 위해 빽빽한 소나무 군락지로 들어서 한창동안 완만한 오름길을 오르다 얼마 되지 않아 발아래에서 산산이 부서지는 갈잎의 절규를 뒤로 뒤로 한 채 내리막과 오르막을 수차례 거친 끝에 새목이재에 다다랐다.

발아래 남면 연천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추위를 걱정해 입었던 겨울 등산복이 거추장스러워 진다. 무등산이 떡 하니 버티고 서서 초보 산행을 나선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처럼 가까이 와 있을 정도로 시계도 좋다.

또한 호남정맥 탐사에 나선 이들을 반겨주듯 함초롬이 핀 생강나무가 노랗게 예쁜 자태를 드러내고 있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도 수줍은 시골 처녀처럼 바위와 나무 뒤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서 노란 동백꽃 속에 넘어져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고 한 꽃이 ‘생강나무 꽃’이다.

‘생강나무’는 가지를 꺾거나 잎을 비비면 생강냄새가 난다고 얻은 이름이다. 동백이 자랄 수 없는 추운지방에서는 ‘생강나무’의 열매로 기름을 짜 동백기름 대용으로 사용했다 한다.

그래서 지역에 따라 나무의 이름을 산동백이라 부른다. 보통사람들은 이즈음 피는 노랑꽃만 보면 산수유로 착각한다. 산수유는 중국에서 들여 온 나무로 우리 산야에 저절로 자라는 것은 없기 때문에 산에서 노랑꽃이 피는 나무는 ‘생강나무’로 여겨도 좋다고 예비 산꾼이 조언한다.

헐떡거리던 심장을 가라앉힌 일행들은 다시 등산화 끈을 조여 매고 한국가사문학관로 이어지는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중간 중간에 표식기와 이정표가 잘 갖추어지고 오르내림도 심하지 않아 편안하게 트래킹을 즐길 수 있는 구간으로 간간히 탁 트인 곳에서 바라본 광주호도 저 아래 눈에 들어온다.

약간의 급경사가 이어진 가 싶더니 높이 493m의 최고봉을 알리는 양철 표지판이 일행을 반긴다. 먼저 간 산꾼들의 흔적인지 몰라도 하나둘씩 쌓은 돌들이 모여 돌탑을 이루고 약간의 공터가 있다. 최고봉의 의미에 대해 舌戰을 한 창 동안 벌인 일행은 예비 산꾼의 중재로 휴전을 선포한 후 발길을 옮긴 끝에 갈림터에 이르렀다.

호남 정맥과 소쇄원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山上 삼거리 길이다. 남면바르게살기위원회에서 가사문학의 고장임을 알리기 위해 漢詩를 적어놓은 표지가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산자락에는 식영정과 소쇄원 환벽당 독수정 같은 정자와 원림이 가사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 정자와 원림은 낙향한 선비들이 기거했던 은둔의 장이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어 가는 수양의 공간이다.

무등산에 기대고 있는 이들 정자에는 호남의 삶과 정신세계 이데아가 함축돼 있는 공간이자 여러 선비들이 모여 학문과 세상일을 논하는 토론의 장소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완만한 내리막을 내려서 편안하게 능선 길을 따르면서 편안한 산행을 즐기던 일행들은 갑자기 급경사로 내려서 이어지는 능선길이 닥치고 이제까지와는 달리 잡목 가지며 쓰러진 나무 등걸이 길을 막아서자 고행의 산행길을 나선 수도자처럼 갑자기 말이 사라진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부여진채 오르막 산행을 한 끝에 잘 다져진 시멘트 포장길의 노가리재에 이르렀다. 간간이 차가 지나가는 한적한 길. 예전에 나무꾼들이나 장보러 가는 이들이 이 고개에 모여 앉아 쉬면서 쓸데없는 소리나 허튼 소리를 떠벌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노가리재에서 옛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앞으로 펼쳐 질 정맥 산행의 즐거움과 산경표를 따라 가야할 멀고도 험난한 그리고 설레는 길을 마음속으로 그리며 굳은 의지를 다시금 불태워 본다.

예비 산꾼의 호남정맥 예찬론이 펼쳐진다.

“호남정맥은 우리의 산이고 민초들의 산줄기다. 그리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정맥의 분수령은 차라리 짜릿한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우리들의 삶이기 때문이다. 우리 것도 모르고 중국 황산이나 스위스 알프스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힘줘 말하는 이의 열정과 호남정맥 사랑이 느껴진다.

노가리재에서 펼쳐진 예비 산꾼의 박학다식이 빛을 발한다.

고개, 재, 치, 령의 구별법에 대한 강연이 이어진다.

“산은 물을 가르면서 고개를 만든다. 우리말로 고개 또는 재로 표현되기도 하며 한자로는 '영(嶺)' 또는 '치(峙)' 등으로 표기된다. 비슷한 말이지만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고개'는 산이나 언덕을 넘어 다닐 수 있도록 길이 나 있는 비탈진 곳으로 돼 있다. '재'는 길이 나 있어서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은 산의 고개로 풀이돼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고개'는 '재'보다 의미의 폭이 넓은 말이며 '고개' 중에서도 높은 산의 것을 '재'라고 할 수 있다.”

“ '영'은 '재'와 동의어다. 지금은 물론 ‘훈몽자회’와 같은 예전 문헌에도 '재 령(嶺)'과 같이 돼 있어 고유어 '재'의 한자어는 '영'임을 알 수 있다. '치'는 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은 말로 '고개'가 있는 곳의 지명에 '치'가 들어있다” 산사람의 산상강의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진다.

도로를 가로질러 절개지 위로 올라서지만 길은 없고 잡목과 나뭇가지 뿐 이고 활공장으로 오르는 임도가 고통의 시작임을 예고한다.

임도 중간에 활공인들의 입산을 방지하기 위해 심어 놓은 듯 한 나무와 엉성한 받침대가 있는 임도를 만난다.

송림의 기운을 받아 힘차게 발길을 옮기자 넓은 공터의 헬기장이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전망이 확 뚫리며 산 아래 드넓은 창평 풍경이 시원하고 햇살도 좋다. 전원 풍경에 넋이 빠져 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발길을 옮기자 월봉산 제2이륙장이라는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이 다시 한번 전원의 즐거움을 선사해 아쉬움을 100% 충전한다.

노가리재 이후부터는 오르내림이 심하게 이어지자 거친 숨이 동시에 터져 나온다. 국수봉으로 가다보니 발아래 외동제와 외동리가 눈에 펼쳐진다. 목장지대 철조망을 끼고 숨 가쁘게 발을 옮긴 덕분에 조망이 좋은 곳에 자리 잡은 산불감시초소가 외로이 일행을 다음 산행지로 인도한다.

정맥 산꾼들이 안내하는 표식기를 이정표 삼아 임도를 기분좋게 걷다보니 인동 장씨 세장천이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 9기의 가족무덤 위로 가파른 경사길이 일행에게 고통을 요구한다.

투덜거리며 올라선 뒤에 만난 국수봉(557.6m) 정상.

산불감시 카메라가 있는 국수봉에서 건너편으로 수양산과 만덕산을 바라본다. 세월이 변하고 변해도 자기 모습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산들이 의젓하다. 주변의 다른 봉우리 보다 뾰족한 월봉산이 지척에 와 있는 것처럼 벌써 가슴속에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어느덧 산행의 종점을 예고하듯이 기분 좋은 뻐근함이 온몸을 휘감는다. 정상에 오르면 내리막이 있듯이 내리막길이 한동안 펼쳐지더니 후손들의 보살핌이 없어 황폐해 질대로 황폐해진 무덤을 지나고 또 다른 무덤한기를 지나 임도로 내려서자 입석 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정종대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