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탐방 개선사지석등 (보물 제 111호)

담양에는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산재해있다. 보물 5점을 비롯해 많은 누정들이 지방문화재로 등록돼 가사문학의 본고장임을 입증하고 있다. 본지는 관내에 산재한 문화재를 찾아 문화재의 가치를 조명하고 보존 실태를 점검하는 한편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을 찾아보기 위해 문화재 탐방에 나섰다.(편집자)

1139년 전. 신라 왕실은 어지러운 사바세계에 불을 밝히기 위해 작은 등불을 마련했다. 밤이 되면 칠흑 세상을 홀로 밝히던 그 세월이 얼마던가. 지금은 이름도 낯선 시멘트가 몸을 감싸고 산중 홀로 외로우니 사냥꾼의 총소리만 요란하다.

개선사지

남면 가사문학관에서 광주 충효동 방향으로 버스정류장 석재지점에 이르면 개선사지석등(開仙寺址石燈) 안내판이 보인다. 그곳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난 덕의길 1.8km를 따라가다 보면 빽빽한 들깨밭 사이로 석등 옥개석이 초라하게 봉곳하다.

마을(개선동)로 들어가는 내리막길을 중심으로 왼편은 주차장이고 오른편엔 석등이다. 석등을 끼고 도는 이 내리막길은 경사가 심해 석등 꼭대기인 보주(寶珠)와 키가 같다.

개선사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고 절터 양쪽 산맥과 툭 트인 앞 하늘이 초라한 암자는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개사선라는 사찰명은 육당 최남선이 심춘순례기(尋春巡禮記)에서 “개선동(開仙洞)에서 석등(石燈)을 구경했다”는 내용으로 미루어 50년 전까지만 해도 개선사와 관계된 이름이 전래해 왔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1989년 석등주변 절토과정에서 2개의 숫막새가 출토됐는데 통일신라 및 고려시대 막새로 추정되고 있어 절터였음을 짐작케 하고 있다.

석등 주변엔 10m정도 떨어져 석등을 설명하고 있는 안내판이 있고 석등을 중심으로 3~4m 정도 떨어져 에워싼 70cm높이의 울타리가 있다. 또 전면에 寶物 第 百十一 號 開仙寺址石燈, 후면에 大韓民國이라고 새겨진 70cm가량 된 비석이 울타리에 맞닿아 있다.

'보수' 인가 '훼손' 인가

울타리를 넘어 석등과 마주하니 첫눈에 들어온 건 ‘훼손’의 심각성이었다. 석등의 웅장함이나 찬란한 불교미술은 간 데 없고 석등을 다듬었을 석공의 예술혼은 이미 파괴된 지 오래다.

팔각하대석과 맞닿은 간주석은 온통 시멘트나 인공수지로 보식해 ‘쎄멘옷’을 입고 있고 유등(油燈) 불빛이 퍼지도록 창을 낸 화사석(火舍石)은 깨진 틈마다 인공수지가 조잡하게 매우고 있었다.

화사석 천장엔 말벌집이 있다 떼어진 자국이 보이고 상대석과 간주석 사이도 흔들림을 방지하기 위해 시멘트로 아예 접착해 버렸다.

석등 키가 3.5m라 화사석을 덮은 옥개석(지붕) 위는 볼 수 없어 다시 길에 올라 망원렌즈로 살펴보니 시멘트는 가히 ‘만병통치약’이었다.

지붕 위를 장식하는 상륜부(相輪部)인 앙화(仰花, 꽃모양을 새긴 장식)와 보륜(寶輪, 둥근 테가 층층이 쌓인 모습으로 주로 탑이나 석등 꼭대기를 장식하는 것), 보주(寶珠, 여의주, 탑이나 석등 맨 꼭대기에 앉은 구슬장식)는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온통 시멘트가 에워싸고 있었다.

불빛이 나오는 창과 창 사이 기둥(간주, 竿柱)에는 불을 밝히게 된 연원을 적은 조등기(造燈記)가 천년의 세월을 뒤로하고 또렷하다. 이곳도 ‘시멘트의 공격’을 당했으나 심하지 않을 뿐이다.

안내판의 오류와
문화재의 고의 훼손

조등기(造燈記)는 총 8개의 기둥 중 5개의 기둥에 새겨져 있다. 현재 석등을 정면에서 마주하고 서면 바로보이는 간주 2개와 오른쪽으로 돌아(시계 반대방향) 첫 번째 기둥에는 아무런 글씨가 새겨져 있지 않고 네 번째 기둥부터 새겨져 있다.

간주(竿柱)는 가운데에 난 각을 중심으로 두 개의 면을 이루고 있으며 각각의 면에는 1행씩 글이 새겨져 총 10행 136자가 새겨져 있다. 글씨의 크기는 4cm가량이며 해서체(楷書體)로 6행면은 3글자 정도 새길 수 있는 모서리가 떨어져 나가 빈자리로 남겨뒀다.

9행면은 가운데로 글을 새겨가다 끝에 五 畦를 좌우로 해 두 줄로 새겼으며 10행면 또한 東令行土北同을 좌에 上南池宅土西川을 우로해 2.5cm가량의 크기로 두 줄로 새기고 奧畓十結은 다시 4cm크기로 가운데에 새겼다. 그 밑에 八 畦를 좌우로 새기고 다시 그 밑에 좌에 東令行土西北同을 우에 上南池宅土를 새겼으며 글씨크기는 모두 2.5cm가량이다.

조등기의 내용은 “1행 景文大王主 2행 文懿皇后主大郞主願石燈 3행 炷唐咸通九年戊子中春夕 4행 繼月光前國子監卿沙干金 5행 中庸途上油糧業租三百碩 6행 僧靈判 建立石燈 7행 龍紀三年辛亥十月日僧入雲京租 8행 一百碩烏乎比所里公書俊休二人 9행 常買其分石保坪大業渚沓四結 五 畦 10행 東令行土北同 上南池宅土西川 奧沓十結 八 畦 東令行土西北同 上南池宅土”으로 그 뜻은 1, 2행이 경문대왕과 문의황후 그리고 큰 공주님께서 불을 밝힐 석등을 세우기를 바라셨다.

3, 4, 5, 6행은 함통 9년(경문왕 7년, 868) 무자해 음력 2월 저녁에 달빛을 잇고자 전임 국자감 경인사간 김중용이 (등을 밝힐) 기름의 경비로 3백석을 날라 오니 승려 영판이 석등을 건립하였다.

7, 8, 9, 10행은 용기 3년 (대순 2년, 진성여왕 5년, 891) 신해년 10월 어느날 승려 입운이 서울에서 내려준 조 1배석으로 오호비소리의 공서와 준휴 두 사람에게서 그 몫의 석보평대업에 있는 물가에 있는 논 4결(논은 5배미로 동쪽은 영행의 토지이고 북쪽도 마찬가지이다. 남쪽은 지택의 토지이고 서쪽은 개울이다)과 물가로부터 멀리 있는 논 10결(논은 8배미로 동쪽은 영행의 토지이고 서쪽과 북쪽도 같다. 남쪽은 지택의 토지이다)을 영구히 샀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석등 앞에 있는 안내판이 조등기를 설명하며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안내판에는 “1행부터 6행까지는 신라 경문왕과 그 왕비, 공주가 주관하여 이 석등의 유지비를 충당키 위한 토지의 구입과 그 토지의 위치에 관한 기록이 적혀있다”고 하고 있으나 위에서 본 바와 같이 1행~6행은 왕과 왕비, 공주(뒤의 진성여왕)가 석등을 세우기로 했고 868년에 국자감 사간을 지낸 김중용이 기름값 3백석을 받아 왔으며 승려 영판이 석등을 세웠다는 내용으로 “석등의 유지비를 충당하기 위한 토지의 구입과 토지의 위치”는 7행부터 10행의 내용이다. 하지만 안내판의 설명은 1~6행을 설명하며 7~10행의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어 수정이 요구된다.

또 6행 僧靈判에서 判자가 고의적으로 쪼아져 지워지고 없다. 개선사지석등이 최초로 문헌으로 남게 된 시점은 일제시대 간행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報)’로 이 때 촬영된 사진에는 判자가 보이나 1991년 보수 이후의 사진부터는 보이지 않아 우리 사는 지금 문화재 훼손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오류

이제까지를 미루어보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1~6행은 경문왕 7년(868년) 때의 일이고 7~10행의 일은 23년 후인 진성여왕 5년(891년, 조등기에선 大郞, 즉 큰 공주)때의 일이다.

따라서 짐작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건립당시 868년에 1~6행이 먼저 새겨지고 23년 후인 891년에 다시 7~10행이 새겨졌을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진성여왕 5년인 891년에 23년 전 석등을 세우게 된 연유부터 당시 석등을 유지하기 위해 논 구입 등의 사건을 새겼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부분에 대한 연구결과는 찾아볼 수 없어 조등기(造燈記) 금석문(金石文)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1991년 보수기록은 웃지 못 할 큰 오류를 또 범하고 있다.

보수기록은 첫 머리에서 개선사지석등을 설명하며 “건립연대를 밝힌 명문(銘文)이 있는 유일한 신라석등이다.”라고 해놓고 바로 다음 줄에 “음각된 명문에 의하면 신라 진성여왕 5년(891)년에 석등이 건립되었다.”라고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개선사지석등은 868년에 건립되었다)

책 속의 문화재가 아닌 볼 수 있는 문화재로

취재 중 사람들에게 ‘개선사지석등’에 대해 물어본 결과 대부분은 ‘개선사지석등’이란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또 알고 있더라도 실제로 본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난 데는 개선사지석등의 위치가 너무 오지이기 때문이다. 같은 국가지정보물이라도 길가에 자리 잡고 있는 ‘석당간’이나 ‘오층석탑’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고 관심도 많다.

담양 초입인 공고 앞 고사리등에 ‘어색한 사자상’을 세우기보다 ‘신라 천년의 불꽃’인 ‘개선사지석등’ 실물모양을 세우는 것이 문화재를 가까이 하고 사랑하는 마음일 것이다.

또 관계기관은 철저한 고증을 거쳐 문화재 원형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서영준 · 한 얼 記者

▲ 사진스케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