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에는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산재해있다. 보물 5점을 비롯해 많은 누정들이 지방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관내에 소재한 문화재를 찾아 가치를 조명하고 보존 실태를 점검하는 한편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을 찾아본다.(편집자)

읍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창평소재지 넘어 사랑채식당 삼거리에 다다르면 ‘신갈’ 버스정류장이다. 그 곳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계속 가면 ‘등갈’ 이고 다음은 ‘장동’ 이다.

그런데 ‘장동’ 못가서 ‘배징이’란 이름의 간이정류소가 나오는데 거기서 내려야 한다. ‘배징이’에서 조금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거기 이정표가 ‘미암유물전시관’에 가려면 오른쪽으로 700m 더 가란다.

아무래도 미암은 자신만의 ‘샹그릴라’를 찾아 이렇게 먼 곳까지 온 것 같다. “그 옛날에 어떻게 이 골짜기까지 들어왔을까?!”

헌데 일단 도착하면 감탄사는 바뀐다. “어떻게 이 골짜기에 이런 별천지를 만들었을까?!” 미암은 자신만의 이상향을 찾은 게 아니라 자신의 재력과 권력을 바탕으로 ‘샹그릴라’를 만들어 버렸다.

모현관(慕賢館)

미암일기를 보기 위해 찾은 곳, 대덕면 장산리 213번지 모현관. 모현관 주변엔 후학을 가르치며 풍류를 즐기던 연계정(漣溪亭)과 미암사당, 유씨 종가가 있다.

연잎 빽빽한 연못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이 모현관은 자연석을 쪼아 만든 큰 벽돌로 쌓아 올렸다. 건물형태는 ‘이태리식’도 아니고 ‘일본식’도 아닌 그냥 ‘현대식’(?)이다.

헌데 모현관이 자리한 그 연못은 인공연못으로 조성연대는 알지 못하나 미암(眉巖)이 조성했을 개연성이 높다. 보통 인공연못을 만들며 나온 흙은 쌓아 올려 가운데 섬을 만드는데 이를 방죽호라 한다.

그 방죽호에 1959년 4월 4일 모현관이 세워졌는데 이는 당시 미암선생 유물보존회장인 정락평(鄭樂平)씨와 14대 종손인 유대수(柳大洙)씨 주도로 문교부, 내무부, 서울대 총장, 전남도지사, 광주고등법원 등 유지들이 힘을 합해 지은 것이다.

모현관 주변은 소나무와 팽나무 등 수려한 자태의 노거수가 많아 웨딩포토 촬영장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안목이 높은 사람들은 조선시대 정원문화를 엿볼 수 있다.

현재는 새롭게 45억원을 들여 미암유물전시관이 건축되고 있는데 완공 시에는 미암의 유물이 모두 그 곳으로 옮기게 된다.

모현관 보관 전에는 미암사당(眉巖詞堂)에

미암사당(지방민속자료 제36호)은 얼마 전 까지 상량문을 찾지 못해 그 정확한 건립연대를 몰랐다. 단 암막새 기와가 추월산 진경사에서 만력 36년(1608년)에 만든 것으로 확인돼 미암의 증손자인 유익원(1579~1645)과 유익청(1582~1660)형제에 의해 사후 30년 때인 1608년 건립된 것으로 짐작돼 왔다.

그러나 얼마 전 실시한 미암사당 보수 때 다행히 상량문이 발견돼 미암 사후 3년인 1580년에 건립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미루어 미암 사후 3년 상을 지낸 가족들은 사당을 지어 선생의 일기인 미암일기 14책과, 유품, 고문서, 전적 등을 보관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이 미암사당도 미암일기에 버금간다. 정면 외벽 문틀 상단에 그려져 있는 3개소의 벽화와 건물내부의 벽화는 미술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커 학계의 관심이 높다.

외부 벽화는 왼쪽부터 백학도, 등룡도, 봉황도가 그려져 있다. 백학도는 미암의 고고한 절의를 나타내며 등룡도는 마침내 뜻을 얻어 현관으로 등용되는 화려한 관도를 상징한다. 봉황도는 일가의 화려한 출세도를 상징한 것이라 하겠다.

벽화가 사찰 외벽에서는 많으나 유교적 건축물인 사당에 그려져 있기는 매우 드물어 작품성보다는 그 희귀성과 상징미가 돋보인다.

“미암은 누구인가”

미암 유희춘(眉巖 柳希春 1513~1577)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는 인중(仁仲), 호는 미암 또는 인재(寅齋)이다.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아버지 유계린(柳桂麟)이 순천에서 해남으로 이사한 후 낳은 차남으로 태생지는 해남이다. 시호는 문절(文節)이며 여류문인 송덕봉(宋德峯)의 남편이다.

24세 때인 1537년(중종 6년)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다음해 문과에 급제해 성균관 학유, 예문관 검열, 홍문관 수찬, 무장현감 등을 지내다가 을사사화 때 파직됐다. 그러다 다시 1547년(명종2년)에 ‘양재역 벽서사건’에 연루돼 제주로 유배됐었다.

다시 제주에서 함경도 종성으로 이배돼 19년의 유배생활을 보냈으며 1567년 선조가 즉위하자 사면돼 유배에서 돌아와 대사성, 부제학, 전라도관찰사, 대사헌 등을 역임하고 1575년(선조 8) 이조참판을 지내다가 사직한 ‘불사조’ 같은 인물이다.

사후 좌찬성에 추증되어 담양의 의암서원(義巖書院), 무장의 충현사(忠賢祠), 종성의 종산서원(鍾山書院)에 제향됐다.

경사(經史)와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미암일기(眉巖日記)>, <속몽구(續蒙求)>, <역대요록(歷代要錄)>, <속휘변(續諱辨)>, <천해록(川海錄)>, <헌근록(獻芹錄)>, <주자어류전해(朱子語類箋解)>, <시서석의(詩書釋義)>, <완심도(玩心圖)>, <국조유선록(國朝儒先錄)>,<강목고이(綱目考異)> 등의 저서를 남겼다.

유배생활 중 가진 고통을 겪은 미암은 재등용된 후 재산형성에 몰두해 쥐꼬리만 한 관료의 봉록으로는 이룰 수 없는 거부(巨富)를 이룬다. 을사사화와 역모사건에 연루돼 죽을 고비를 넘겼던 미암은 이미 500년 전에 ‘펀드’와 ‘에셋’에 눈을 떴다.

일기에는 노비가 100명쯤으로 나와 있으며 토지도 담양, 해남 등에 300여 두락 정도로 추산된다. 이는 미암의 며느리 울산김씨가 미암 사후 5년 1582년에 2남 1녀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분급문기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많은 노비와 토지는 미암이 유배에서 풀려나 재사환된 후 10년간 형성한 것으로 토지는 미암이 산 것도 있으나 상당수는 중앙대관의 위세를 이용해 수영과 백성의 노역 으로 해남 연안의 간척 및 산지와 황무지를 개간한 것이었다.

노비는 중앙대관에게는 품계에 따라 지급되거나 자식들의 혼인으로 취득되는 게 많았는데 각종 신역을 대신해 돈이나 곡물로 받는게 많았기 때문에 토지에서 나오는 소득 이상으로 재산 수입에 절대적이었다.

이처럼 풍족한 ‘권세’는 자연 풍류와 학자로서의 고집으로 이어진다. 그래서였을까 미암은 책 수집에 관해선 ‘마니아’ 수준을 뛰어 넘는다.

‘미암일기’의 1575년 10월29일조를 보면 미암이 다락방의 책을 중당(中堂)으로 옮기는 대목이 있는데 그 책이 무려 3500책이라고 나온다. 다락방에 있던 책만 3500권이면 그가 지니고 있던 책의 분량은 쉬이 짐작할 수 없는 만큼이다.

책을 귀하게 여겨 결코 많은 분량을 인쇄하지 않았던 조선시대. 단적인 예로 미암은 1571년 외조부 최부(崔溥)의 문집 ‘금남집(錦南集)’을 인쇄할 때도 단 15부 밖에 찍지 않았다. 책 속의 글을 금지옥엽으로 보고 함부로 많은 양을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미암은 이 책을 당대 손꼽히는 학자였던 박순(朴淳)과 송순(宋純), 기대승(奇大升) 등에게만 보냄으로서 책의 존엄성을 더욱 높였다.

당시 조선사회의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그가 보인 책에 대한 열정은 책이 흔한 요즘에도 놀라울 따름이다. “다락방에 3500책… ” (다음호에 계속) /서영준 · 한 얼 記者

▲ 화사한 백일홍이 만발한 모현관 길목

▲ 미암사당

▲ 연계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