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에는 유서 깊은 문화유적이 산재해있다. 보물 5점을 비롯해 많은 누정들이 지방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관내에 소재한 문화재를 찾아 가치를 조명하고 보존 실태를 점검하는 한편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을 찾아본다.(편집자)

‘선비정신의 산물-미암일기’

미암은 풍족한 생활 속에서도 결코 유배지에서의 힘든 나날을 잊지 않았다. 선비로서의 본분에 충실했던 것이다. 결코 주지육림에 빠져 흐트러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 단적인 예가 ‘미암일기(眉巖日記)’이다. 1567년부터 1577년까지 11년에 걸쳐 한문으로 작성한 이 일기가 후대에 이렇게 큰 자료가 될 지 미암 자신도 몰랐겠으나 역사적 사료로서의 중요성뿐 아니라 개인으로서 그가 보인 ‘선비정신’은 무엇이 ‘선비’인가를 알게 한다.

미암일기는 원래 14책이었으나 지금 남아 있는 것은 11책뿐이다. 이 일기는 1567년(선조 즉위) 10월 1일에서 1577년(선조 10) 5월 13일까지 약 11년 동안 조정의 크고 작은 사건, 중앙·지방의 각 아문의 기능, 관리들의 일상생활, 저자가 홍문관원·전라도감사·사헌부관원 등을 역임하면서 겪은 내용 등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보고 들은 바를 자세하게 기록한 것이다.

제1책은 1567년 10월 1일에서 1568년 3월 29일, 제2책은 1568년 3월 29일에서 12월 5일, 제3책은 1569년 5월 22일에서 12월 30일, 제4책은 1570년 4월 24일에서 7월 8일, 제5책은 7월 9일에서 12월 25일, 제6책은 12월 26일에서 1571년 12월 3일, 제7책은 1572년 9월 1일에서 1573년 5월 26일, 제8책은 1573년 6월 1일에서 12월 30일, 제9책은 1574년 1월 1일에서 9월 26일, 제10책은 1575년 10월 27일에서 1576년 7월 29일, 제11책은 부록으로 저자와 부인 송씨의 시문과 잡록이 수록돼 있다.

조선시대 개인 일기로서는 가장 방대한 것으로 ‘선조실록’을 편찬할 때 율곡 이이의 ‘경연일기(經筵日記)’, ‘석담일기(石潭日記)’와 더불어 실록편찬의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이 책은 임진왜란 이전의 사료가 거의 없는 현재 상태에서 조선 중기의 정치사와 사회사, 경제사 연구의 기초자료가 된다.

특히 동서분당 이전의 정계 동향과 사림의 동태, 감사의 임체(任遞)와 순력(巡歷) 및 감사의 직무수행, 경재소(京在所)와 유향소(留鄕所)의 조직과 운영, 중앙관료와 지방관의 관계 등에 관한 중요한 자료가 실려 있어 당시 수령제 및 지방제도 연구에도 매우 중요하다.

또한 사회일반의 풍속·문화·물산 등 당시 사회·문화사를 알 수 있는 풍부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일기 원본은 미암 사후 미암의 다른 유물과 함께 미암사당에 보관됐으나 방대한 양의 다른 서적들은 모두 흩어져 버렸었다. 1869년(고종 6년) 9대손인 유경심(柳慶深)과 유정식(柳廷植)이 일기 원본을 발췌해〈미암집〉을 발간했는데 이 때 만든 목판도 보존돼 있으며 미암일기와 함께 보물로 지정돼 있다.

그 후 미암일기는 1938년에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에서〈조선사사료총간 朝鮮史史料叢刊〉으로 5책을 간행한 적 있는데 사라진 3책을 대신해〈미암집〉을 바탕으로 일부분(1574년 10월 9일에서 1575년 3월 11일, 1576년 8월 3일에서 1577년 5월 13일까지의 내용)을 보충했다.
또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4권 4책의〈미암선생일기초록 眉巖先生日記抄錄〉은 필사본으로〈미암집〉이나〈미암일기〉원본에 없는 내용이 일부 있어 이것들을 보충할 수 있다.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미암일기 1567-1577’

미암에 대한 연구는 미암일기의 번역뿐 아니라 다방면으로 추진돼 학자들에 의해 많은 성과를 올리게 했다.

그 중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사계절출판사, 정창권, 2003)는 2만권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화제작이기도 하다.

이 책은 미암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약간의 상상력을 보태 재구성한 것으로 조선시대 관료의 관직생활, 살림살이, 나들이, 재산증식, 부부갈등, 노후생활 등 여섯가지 주제로 엮어졌다.

양성평등시대

미암일기가 준 많은 자료 중에서도 가장 많은 조명을 받는 것은 임진난 이전엔 남·녀 평등사회였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과는 사뭇 달라 많은 것을 반추하게 한다.

임진난 이전 사람들은 아들과 딸을 가리지 않았고 본손과 외손 또한 구별하지 않았다. 혼인풍속도 남자가 여자집으로 가서 혼례를 올리고 그대로 눌러 사는 장가와 처가살이가 많았으며 친정생활도 흔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아들 딸 차별 없이 상속은 균등하게 이뤄졌고 제사도 자녀들이 서로 돌아가며 지내는 윤회봉사가 관행이었다.

여성들의 바깥출입도 자유로웠을 뿐 아니라 학문과 예술활동도 장려돼 이 시기에 신사임당, 송덕봉, 허난설헌, 황진이, 이매창 등 명실상부한 여성예술가들이 대거 출현한 것은 이를 반증한다.

/서영준 · 한 얼 記者

▲ 미암사당 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