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기 싫은 11월이 지나고 달력도 한 장이다. 유난히 사건사고가 많았던 요 몇 주는 기억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TV와 일간지 그리고 다른 주간지에 보도된 우리 지역 ‘사건의 면면들’ 그들이 뭘 그리 잘 알아서 써대고 마이크를 잡았는지 모르겠지만 얼마만큼 정확히 얼마만큼 세세히 알아보고 ‘진지하게’ 사건을 보도했는지 나조차 묻고 싶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마감시간에 맞춰 소설을 쓰진 않았는지 끝나지도 않은 경찰 발표를 확대해석 하지 않았는지.
부메랑은 그들이 던졌는데 우리가 몸으로 막고 있다. 아무런 방패도 없이.
사회는 이미 다문화가정을 우리의 일부로 인식하고 그 이질감에 대해 점점 무감각해져 가고 있는데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연쇄적’이어서 일까. 그러나 수면위로 떠오른 문제의 대부분은 조그마한 양심으로도 진정 참회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문제는 ‘외국인며느리가 우리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외국인며느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었는지’였다.
얼마 전 다문화가정을 담당하고 있는 郡관계자와 오랜 시간을 통화했다. 그와 기자가 가진 공통분모는 문제가 발생한 다문화가정의 ‘발화점’은 한국으로 시집 온 여성들이 아닌 남성들의 문제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의학계에선 “남성들에게도 산후우울증이 올 수 있다”고 한다. 생활고로 아니면 어떤 이유로든 늦은 결혼을 한 남성들이 스무 살 이상 차이나는 여성을 신부로 맞이해 아이를 낳을 경우 남성이 느끼는 ‘중압감’은 당사자가 아니면 상상조차 못할 정도라는 것이다. 특히 경제 여건이 어려운 ‘시골 농사꾼’이라면. 우리는 이제 그 男子들의 속내를 조금이라도 알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이다. “늦장가 들었는데 어린 신부 데리고 산다”고 시샘 반 조롱 반만 할 줄 알았지 ‘그들이 느낄 두려움과 아픔’을 상상이나 해보았는지… 나부터 반성해 본다.
郡 시책도 그러하다. 郡이 시행하는 가족관련 프로그램 중 ‘남성’을 위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 다문화가정의 한쪽편인 ‘부인’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은 있어도 가정의 절반인 ‘남편’을 위한 프로그램은 단 하나도 없다. 가정의 한 쪽 날개인 ‘남편’들도 그들만의 ‘해방구’ 또는 ‘비상구’가 필요하다.
담양엔 현재 170가구의 다문화가정이 있다. 그러나 한글교실을 비롯 다른 프로그램에 나오는 여성은 80여명 밖에 되지 않는다. 그 80여명의 부인들이 대부분의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나머지 가정에 대해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기도’만 드릴 수 있을 뿐 이렇다 할 뾰족한 수는 없다. 이를 해결키 위해 작년부터 부부가 같이 교육받는 프로그램도 신설했었다. 하지만 대부분 프로그램은 ‘피상적인 어른들 놀이’에 그치고 있다.
郡 담당도 고충을 털어 놓는다. 한국남편들이 부인들의 외출을 기피하며 남의 눈에 띠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무슨 행사에 나오라고 하면 자신을 마치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오해하고 있어 그런 줄 알고 먼저 경계선을 그어 버린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더 이상의 시행착오를 용납하지 않는다. 접근점을 바꿔야 한다. 이젠 男子들을 위한 갖가지 프로그램이 필요한 때다. 郡 담당조차 ‘남자들은 밖에서 활동을 많이 하지 않는가’라고 하지만 80명의 며느리가 프로그램에 중복되듯 남성들도 조기축구회원이 테니스회원이고 테니스회원이 탁구회원이다. ‘마흔 넘어 장가간 가난한 시골 농사꾼’이 쉽게 낄 곳은 없었다는 말이다.
다문화가정과 공무원의 1:1자매결연도 좋지만 왠지 구태의연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애꿎은 공무원들만 닦달하지 말고 현실적인 대안을 보자. 공무원도 그들의 가정이 있는데 ‘남의 가정’까지 고민해야한단 말인가. 다문화가정은 독거노인수발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국제결혼여성들의 남편들이 부인이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한다면 그 남편들에게 자리를 주고 기회를 주자. 그들만의 공간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눈다면 펴지 못한 한 쪽 날개를 활짝 펴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