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헐뜯기 or 후보 띄우기'에 식상

“XXX활동을 하고 △△△을 지낸 ○○○후보를 알고 계십니까? 아시면 1번, 모르시면 2번을 눌러주세요.”

“○○○후보를 XX 정치인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면 1번, 아니시면 2번을 눌러주세요.”

4월 총선을 앞두고 상대 후보를 비방하거나 자신을 홍보하는 여론조사가 도를 넘고 있다. 여론조사가 민의를 알아보는 창구가 아닌 선거운동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방법은 다양하다.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기 위해서는 질문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일단 설문을 듣고 나면 그 후보를 철새 정치인이나 부정부패자로 인식하게 만드는 방법이 손쉽게 동원된다.

반대로 자기 캠프 후보를 홍보하기 위해서는 활동사항이나 맡고 있는 직책 등을 장황하게 설명한 뒤 짤막한 질문을 던진다. 선호 후보를 묻는 질문에는 자기 캠프 후보를 맨 앞에, 경쟁 후보를 맨 끝에 배치하는 것은 고전에 속한다.

이런 전화를 받는 주민들은 몰려오는 짜증과 함께 수화기를 내려놓기 일쑤지만 단 한 표가 아쉬운 예비후보 측은 개의치 않고 계속 다이얼을 돌린다.

주부 강모씨는 “총선 여론조사 전화를 받으면 듣지도 않고 바로 끊어버린다”면서 “가끔 호기심이 생겨 설문을 들어보면 말도 안되는 질문들이 쏟아져 중간에 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지금까지 십여 통이 넘는 전화를 받았지만 설문에 끝까지 응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일각에서는 여론 조사가 선거운동에 악용되는 것은 물론 응답률이 10% 이하에 머물고 있다면서 여론 조사 무용론마저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주민들은 △후보 홍보를 위한 여론조사 횟수와 표본 제한 △여론조사 내용 선관위 사전 허가 등을 주장하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일부 후보 측에서 여론 조사 내용을 선관위에 사전 자문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진행한다”면서 “현재는 여론 조사에 대한 별도의 규제가 없어 단속도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여론조사가 선거에 악용되지 않도록 후보 측과 여론조사 업체에 수시로 안내하고 있지만 다급한 마음에 실무자의 과잉충성까지 겹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같다” 며 “후보 측에서는 민의를 제대로 파악하고 주민들은 후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여론조사가 되도록 각 캠프에서 신중을 기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정종대 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