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주는 꿈속에서 정암의 제자들과 뜻을 같이하는 사림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정암이 제자들을 가르치는 모습도 보았다. 정암 선생은 주무숙과 도연명, 주희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주무숙은 북송 때 성리학 이론을 정립한 유학자로 ‘애련설’ ‘태극도설’ 의 저서를 남겼고, 진나라 도연명은 ‘도화원기’를 썼다.

또한 남송 때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는 ‘무이도가’를 남겼다. 양산보는 한양에 올라오기 전에도 도연명의 시를 좋아했으며 특히 ‘귀거래사’를 자주 읊곤 했다. 그는 정암의 문하생이 된 후에야 주희가 성리학을 공부한 과정을 쓴 ‘무이도가’를 접하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는 주희가 ‘무이정사’ 를 지어 성리학을 공부했다는 무이구곡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양산보는 차츰 생각이 달라졌다. 아버지를 따라 정암 문하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그는 오직 자신의 입신양명만을 생각했다. 아버지의 간곡한 당부대로 기필코 과거에 급제하여 자신의 힘으로 한미해진 가문을 일으키고 싶었다. 그것이 장자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고려 때까지는 선조들이 대대로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살았지만, 조선조에 들어 급제한 분이 없는 것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조부가 겨우 종 5품인 부사직 관직을 받았으나 그것은 두 아들과 영변으로 종군한 공로로 주어진 것이 아니던가.

양산보는 자나 깨나 자신이 기어코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을 빛내고 영변에 있는 조부 유해를 고향으로 모셔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곤 하였다. 양산보는 그 같은 각오로 학업에만 몰두하였다. 평소 과묵한 성격인데다가 글공부에만 열중하다보니 동문수학하는 유생들과도 자주 어울리지 못했다. 동문들과 어울리고 게으름을 피우기는커녕, 잠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서책을 읽었다. 그는 스승의 당부대로 소학을 모든 학문의 기초로 삼고 사서오경을 항상 옆에 두고 읽었으며 역학을 가까이 하였다. 

그는 집을 떠나온 지 반 년 동안은 과거 준비를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오직 서책 읽는 것에 열중했다. 그러던 그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스승의 강해를 듣고 동문수학하는 유생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로,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씩 열려갔다. 지금까지는 오로지 자신의 입신영달만을 생각했던 그가 차츰 나라와 백성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요순시절은 강한 임금의 세상이 아니라 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말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성군이 나와야하고 성군을 만드는 것은 신하들의 역할이 커야한다고 믿었다.

  양산보는 스승으로부터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도의정치를 살려야한다는 말을 듣고 깨달은 것이 컸다. 특히 양산보는 임금이 공자를 모시는 대성전에 참배하여 성균관 유생들에게 행한 알성시 때, 스승이 바쳤다는 춘부를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
 중종 임금은, 공자가 자신이 등용된다면 3년 이내에 도의정치의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방법은 무엇이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또한 짐은 즉위한 지 10년이 지났건만 나라의 기강과 법도가 바로서지 못했는데, 그 까닭은 무엇이고 과연 이상정치를 구현하기 위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 이에 대해 정암이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 하늘과 사람은 근본이 하나이며 하늘의 이치 또한 사람들에게도 같습니다. 임금과 백성의 근본이 하나이기에 임금의 도가 백성들에게 없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옛 성인들은 만백성을 하나로 삼고 그 이치를 보고 도리에 따라 대처했습니다. 도리로써 대처하기 때문에 인륜의 절차를 이끌어갔습니다. 옳은 것은 옳고 그른 것은 그르며 착한 것은 착하고 악한 것은 악하다고 하는 것이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임금이 진실로 하늘의 이치를 살펴, 도리에 따라 일을 처리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백성을 보살핀다면, 나라를 다스리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하늘의 굳세고 꿋꿋한 덕과 땅의 순한 덕을 갖추시고 쉬지 않고 노력하셨으므로, 정치를 베푸시는 마음이 정성스럽고 다스리는 도리가 앞섰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기강이 아직도 바로서지 못하고 법도가 정해지지 않았음을 걱정하십니다.”
 조광조는 임금에게 공자의 도를 이끌어서 나라를 다스리고 예로써 백성의 뜻을 인도하고 즐거움으로써 백성의 기를 순화하고 청치로써 행동을 통치하기를 바랐다.

“무릇 도라는 것은 하늘에 근본 하였으되 사람에게 의지하고 일하는 사이에 행하여 치국하는 방법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적에 밝은 임금은 마음을 바르게 해서 도를 펴지 않은 이가 없습니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도를 펴기 때문에 정치를 함에 있어서 인(仁)을 얻게 되고 만물을 처리함에 의(義)를 얻어, 사물마다 하나도 도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어서,부자의 윤리와 군신의 구분이 각각 이치를 얻게 되고 하늘과 땅의 경륜도 또한 귀결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요.순.우께서 중용의 도를 잡았던 방법입니다.” 

이어서 조광조는 임금은 혼자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니 반드시 대신에게 맡긴 뒤에 다스려야 도가 바로 선다고 아뢰었다.
“전하께서는 대신을 존경해서 정치를 맡기시고 그 기강을 대강 세우고 법도를 대강 정하셔서 후일에 큰 근본이 되고 큰 법도가 행해질 수 있도록 그 기반을 이루소서.”
조광조는 이처럼 중종 임금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도의임을 거듭 강조하고 도를 밝힐 것을 권했다.
“그대는 학문이 깊고 문장도 훌륭하도다.”
중종은 매우 기뻐하고 조광조를 크게 칭찬했다. 중종의 마음에 든 조광조는 그 후 4년 동안 예조좌랑, 홍문관 교리, 부제학을 거쳐 대사헌에 이르기까지 쾌속 승진했다.